저는 10년 동안, ‘나한테 쓰는 돈’을 거의 0에 가깝게 줄이면서 시드를 모았습니다. 5천만 원으로 시작한 그 돈은 10년 만에 6억이 되었고, 지금은 매달 통장에 꽂히는 배당금으로 마음 편한 노후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10년을 미화 없이, 있었던 그대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3년이면 될 줄 알았어요” — 이혼, 그리고 목숨 건 결심
시작은 이혼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크게 흔들렸고, 그때 마음먹었습니다. ‘목숨 걸고 노후를 준비해야겠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당시엔 정말 그 한 문장으로 버텼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3년이면 될 줄 알았습니다. 3년 바짝 아끼고 모으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10년이 걸렸습니다. 평범한 중소기업 월급으로 시드를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길고 지루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10년 동안 죽어라 벌고, 죽어라 아끼고, 버는 족족 계속 시드에 넣었습니다. 주말에도 부수입이 될 만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했고요.
진짜 힘들었던 건 돈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아끼는 것 자체는, 사실 익숙해지면 견딜 만합니다. 정말 힘들었던 건 따로 있었어요. 바로 사람이 멀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사람을 참 좋아했습니다. 친구들 모임이 있으면 어디든 빠지지 않고 다 끼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돈을 안 쓰기로 하니 모임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밥 한 끼, 커피 한 잔이 다 시드에서 빠지는 돈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하나둘 관계가 끊기더니, 어느 날 보니 제 휴대폰엔 단톡방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아이 어릴 때 또래 엄마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안정적으로 소비하며 사는 그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졌고요.
이 대목을 굳이 적는 이유는, 절약을 ‘돈의 문제’로만 이야기하는 게 반쪽짜리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시드를 모으는 일은 통장 잔고와의 싸움이 아니라, 외로움과 조바심을 견디는 마음의 싸움에 가깝습니다. 지금 그 구간을 지나고 계신 분이라면, 그 외로움이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5천만 원은 어디서 났나 — 금과 달러, 그리고 IMF의 기억
“그 5천만 원은 어떻게 만들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초반의 시드는 대학생 때부터 과외하고 통역 번역 아르바이트해서 벌었던 돈이었고요. 사실 저는 해외를 오가며 살았던 시간이 길어서 오래 저축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종잣돈을 지켰습니다.
첫째는 금이었습니다. 그 때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였는데 어릴 때부터 제가 번 걸로 엄마 따라 금은방에 가서 조금씩 사둔 금이 훗날 차익으로 가장 큰 몫이 되었어요. 둘째는 달러였습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꾸준히 달러로 바꿔뒀는데, 여기엔 개인적인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가 IMF 외환위기 직후였습니다. 환율이 900원대에서 순식간에 1,600원까지 치솟았을 때였죠. 선배들 중에 유학을 갔는데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졸업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여럿 봤습니다. 그때 몸으로 배웠어요. ‘원화로만 자산을 들고 있으면, 위기가 오는 순간 내 자산이 통째로 갉아먹힐 수 있다’는 것을요.
이 경험이 지금 제 포트폴리오의 뿌리가 됐습니다. 주식과 분리해 달러 현금을 따로 굴리는 이유, 제가 생존 벙커라고 부르는 그 개념도 결국 이 IMF의 기억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처음 받은 배당 1,000원의 막막함
시드가 어느 정도 모인 뒤, 저는 트레이딩이 아니라 배당 투자를 택했습니다. 저점·고점을 맞히는 매매는 제 성향과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 아프기라도 하면 매매 타이밍을 잡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매도 없이도 굴러가는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배당 투자의 시작은 정말 초라했습니다. 미국 대표 배당 ETF인 SCHD가 좋다고 해서 샀는데, 하필 그 무렵 액면분할을 해서 한 주 가격이 30달러대였어요. 큰맘 먹고 한 주 사봤자 분기에 들어오는 배당이 1,000원도 안 되었습니다. ‘이걸로 내 생활비를 감당한다는 게 말이 되나’ 싶어 막막했습니다. 주변에 배당주를 하는 사람도 없어 물어볼 데조차 없었고요. 그 때는 미국 뉴스들을 찾아보고 해외 커뮤니티 사연들을 찾아 읽으며 혼자 공부했습니다.
가장 허무했던 기억은 작년입니다. 갖고 있던 소형차를 중고로 팔아 그 돈을 전부 SCHD에 넣었는데, 하필 그해 SCHD 주가가 1%도 채 오르지 않았습니다. 차는 없어졌는데 주가는 그대로라니, 내가 잘못한 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올해 초부터 그 주식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배당 투자는 이렇게, 조급해하는 사람에게는 끝없이 지루하고, 견디는 사람에게는 어느 순간 보답하는 게임이더라고요.
3년이 지나자 배당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배당이 쌓이는 게 눈에 보이기까지, 저는 약 3년이 걸렸습니다. 처음엔 매달 만 원이 안 되던 배당이, 재투자를 반복하니 어느 순간 몇만 원이 되고, 몇십만 원이 되었습니다. 이 곡선이 어떻게 가팔라지는지는 SCHD 30년 시뮬레이션에 숫자로 정리해뒀는데, 핵심은 하나입니다. 받은 배당을 다시 사 모으는 것. 재투자를 하느냐 안 하느냐로 20년 뒤 받을 배당이 두 배까지 벌어집니다.
지금 저는 미국 SCHD와 국내 고배당주를 오래 모아왔는데, 이 종목들은 한 번도 매도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자랑할 ‘얼마 벌었어’ 하는 짜릿함은 없습니다. 굉장히 노잼 투자예요. 하지만 그 대신 마음이 편합니다. 장이 하루에 몇 퍼센트씩 빠지는 날에도, 저는 계좌 앱을 열어보고 그냥 닫습니다. 팔 이유가 없으니까요.
지금, 하루 10분 — 6억과 월 250만 원의 시스템
10년이 지난 지금, 5천만 원이던 시드는 6억이 되었습니다. 매달 들어오는 배당은 평균 월 250만 원 정도이고, 분기 배당이 겹치는 6월 같은 달엔 300만 원을 넘기도 합니다.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날짜가 되면 통장에 현금이 꽂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거예요.
재미있는 건, 이제 제가 투자에 쓰는 시간이 하루 10분에서 20분 남짓이라는 점입니다. 리밸런싱을 하는 날에도 그 정도예요. 시드가 작을 때는 1,000만 원만 물려도 게임 끝이라는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변동은 버틸 수 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성장 자산도 조금씩 담아보고 있고요.
10년을 한 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항목 | 그때 (시작) | 지금 (10년 뒤) |
|---|---|---|
| 투자 시드 | 5,000만 원 | 약 6억 원 |
| 내 몫 용돈 | 월 5만 원 | 배당으로 여유 확보 |
| 월 배당 | 사실상 0 (첫 분기배당 1,000원대) | 평균 월 250만 원 (6월 300만+) |
| 투자에 쓰는 시간 | 공부하느라 하루 최소 3 시간 | 하루 10~20분 |
| 마음 | 조바심과 외로움 | “앱 열고 그냥 닫는” 평온함 |
마치며: 제가 아낀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어요
돌아보면 지난 10년, 제가 진짜로 아낀 건 돈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용돈 5만 원으로 산 그 시간을 저는 미래의 저에게 미리 보낸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제가 하루 10분만 일해도 매달 배당이 들어오는 건, 10년 전의 제가 대신 그만큼을 일해둔 덕분이니까요.
그래서 지금 절약의 한가운데서 외롭고 조바심 나는 분들께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투자 재능이 없어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 끝까지 유지할 구조가 없어서 중간에 멈춰서 실패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노잼이어도, 끝까지 살아남는 투자. 저는 그 길을 여러분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면책 안내: 이 글은 특정 종목·상품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는 글이 아니며, 개인적인 투자 경험과 의견을 공유하는 콘텐츠입니다. 언급된 수치는 작성 시점 기준이며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든 투자의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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